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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민일보] 관부재판과 끝나지 않은 허스토리 (상) 이 역사를 지울 수 없다. 게재
게시자 서성화 등록일 2023. 3. 15 14:26
관부재판과 끝나지 않은 허스토리 (상) 이 역사를 지울 수 없다
잊혀선 안된다는 사명감으로 '위안부' 역사관 만든 운동가
  •  김주용 창원대박물관 학예실장 (webmaster@ido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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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죄 요구 관부재판 이끈 고 김문숙 부산정대협 이사장
운영해온 '민족과 여성 역사관' 사후 철거 소식에 창원대 나서
소장물 전수조사·이전해 전시…생활·문학사까지 자료 방대

창원대학교박물관은 영화 <허스토리> 모티브가 된 여성운동가 고 김문숙(1927~2021)의 삶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일본 책임을 인정한 단 한 번의 순간이었던 '관부재판' 의미를 되새겨보는 전시를 마련했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발표한 일본의 책임을 뺀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제삼자 변제' 방식에 공분이 들끓는 상황에서 이번 전시 의미는 큽니다. 지난 2월 15일 시작한 전시는 5월 19일까지 이어집니다. 전시 준비 과정과 무엇에 신경을 썼는지 김주용 창원대박물관 학예실장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이글은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웹진 <결>에도 실렸습니다.
 
관부재판은 1992년부터 1998년까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3명과 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 7명이 부산과 일본 시모노세키를 오가며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요구한 재판이다. 김문숙 정신대문제대책부산협의회 이사장은 원고단장으로 활동하면서 재판을 이끈 주역이다.

창원대는 2021년 김문숙 이사장의 별세 후 여성가족부가 주관하는 조사·전시 사업의 하나로 부산 '민족과 여성 역사관'에 소장하고 있던 관부재판 관련 기록물을 조사했으며, 이번 전시회는 그 결과를 선보이는 자리이다. 조사 과정에서 새롭게 발견한 김문숙 이사장의 개인 소장 자료와 관부재판 관련 기록은 당시 치열했던 순간을 담고 있다.

지금까지 일본군 '위안부'를 바라보던 관점과 달리, 한국과 일본 시민의 공동노력으로 이뤄냈던 관부재판을 재조명하면서 앞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고민해 보는 전시라고 할 수 있다.

김문숙 정신대문제대책부산협의회 이사장이 생전인 2014년 부산 '민족과 여성 역사관'에서 자료들을 설명하는 모습. '민족과 여성 역사관'은 김 이사장이 사비 1억 원을 들여 2004년 개관한 부산지역 첫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이다. /연합뉴스
김문숙 정신대문제대책부산협의회 이사장이 생전인 2014년 부산 '민족과 여성 역사관'에서 자료들을 설명하는 모습. '민족과 여성 역사관'은 김 이사장이 사비 1억 원을 들여 2004년 개관한 부산지역 첫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이다. /연합뉴스

◇휴지 한 조각까지 다 가지고 가겠습니다 = 2022년 4월 신동규(창원대 사학과)·문경희(창원대 국제관계학과) 교수가 '민족과 여성 역사관'의 안타까운 상황을 알리며,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가 공모하는 자료조사와 전시 사업에 함께하자고 했다. 

고고학을 공부하는 필자는 생소한 일본군 '위안부' 전시에 걱정이 앞섰다. 그리고 당시 창원대박물관은 하와이 한인 이민자 묘비 조사와 전시 준비로 추가 전시를 진행하기에 벅찼고, 자료를 이전해 수장·정리할 공간도 마땅치 않아 '민족과 여성 역사관'에 직접 가서 확인하고 결정하기로 했다.

'민족과 여성 역사관'에 도착했을 때 첫 느낌은 '정말 많은 것이 전시돼 있구나!'였다. 전시실이 자료로 가득했다. 많이 보여주고 싶어 한 김문숙 이사장 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이렇게 많은 자료를 어떻게 모았을까 싶었다. 방문한 학생들이 남긴 방명록, 응원의 글과 창고에 쌓인 자료를 살펴보고 깜짝 놀랐다. 이렇게 중요한 자료를 창고에 넣어 두고 사진과 그림만 전시하고 있었다니 노출되지 않은 자료가 오히려 노다지였다.

사실 많은 사람이 '민족과 여성 역사관'에 있는 관부재판 자료만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이야기를 이미 들었었다. 만약 우리가 전시회를 개최한다면 관부재판 자료만으로 전시는 불가능하며 김문숙 생애 속에서 관부재판을 조명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무슨 용기였는지 이대로 두면 안 될 것 같은 사명감이었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따님 김주현 관장께 "김문숙 이사장이 없는 관부재판은 상상할 수도 없고 관부재판 자료는 그가 남긴 자료 중에 아주 작은 일부분입니다. 관부재판 자료뿐만 아니라 여기에 있는 모든 것들이 중요하니, 휴지 한 조각까지 우리가 다 가지고 가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다소 긴장한 듯 보였던 김주현 관장 얼굴에 그제야 화색이 돌고 약간의 미소를 지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김문숙 이사장 삶이자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는 '민족과 여성 역사관'에서 관부재판 자료만 중시하고 나머지 그가 모은 자료와 스크랩 등은 모조품이나, 휴짓조각으로 치부됐던 그간의 설움을 우리가 해소해 드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창원대박물관은 '관부재판과 끝나지 않은 허스토리' 전시를 5월 19일까지 진행한다. 전시를 설명하고 있는 김문숙의 딸 김주현 관장. /김주용 학예실장
창원대박물관은 '관부재판과 끝나지 않은 허스토리' 전시를 5월 19일까지 진행한다. 전시를 설명하고 있는 김문숙의 딸 김주현 관장. /김주용 학예실장

◇5t 트럭 2대 분량에서 보물을 찾다 = 이심전심으로 신동규·문경희 교수는 '민족과 여성 역사관' 외부 간판까지 다 가져가자고 했다. 모두 가져가겠다고 했지만 이 엄청난 자료를 어떻게 정리하고 운반할지 걱정이 앞섰다. 크레인까지 동원해 대형 간판 3개를 훼손하지 않고 그대로 창원대로 옮기는 데 성공했다. 얼마 후 '민족과 여성 역사관' 건물은 철거됐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지금 창원대박물관 전시실 입구에 '민족과 여성 역사관' 간판이 설치된 모습을 보면 가져오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5t 트럭 2대 분량의 방대한 자료를 정리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함께한 연구자들과 대학원생이 고생해 1500쪽 넘는 <민간기록물 조사·수집 사업 결과보고서>를 제출했다. 김문숙 이사장 개인이 수집하고 남긴 자료는 일본군 '위안부'를 비롯한 한일관계사의 중요한 자료였다.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관부재판 과정의 긴박한 상황과 한일 시민 연대 사료를 발견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가 남긴 자료는 정말 소중했다. 또한 일제강점기 김문숙 이사장 성장 과정을 보여주는 자료는 교육사와 생활사 연구에, 1950~1960년대 부산지역 문화예술인과 교류한 자료는 문학사 연구에, 그리고 서울이 아닌 지방 여성운동사 연구에 중요한 사료적 가치와 역사적 의의를 둘 수 있다.

한마디로 김문숙 이사장이 남긴 관부재판 여정과 그가 성공한 여성경제인에서 여성운동가로 변화하는 모습은 모든 이에게 본보기가 되리라 생각했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다 보니, 김문숙 이사장과 그가 이룩한 관부재판 논문이나 글이 거의 없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새로운 자료가 나타날 때마다 전시를 준비하는 처지에서 부담감과 걱정이 배가됐다.

철거되기 전 부산 '민족과 여성 역사관'(왼쪽)과 창원대박물관에서 진행 중인 '관부재판과 끝나지 않은 허스토리' 전시 포스터. /김주용 학예실장
철거되기 전 부산 '민족과 여성 역사관'(왼쪽)과 창원대박물관에서 진행 중인 전시 '관부재판과 끝나지 않은 허스토리' 포스터. /김주용 학예실장

◇'위안부' 전시지만 밝고 예쁘게 표현하고 싶었다 =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수많은 전시가 있었다. 문외한에 가까웠던 필자는 그들의 아픔을 어떻게 전시에 표현해야 할지 상당한 고민을 했다. 

관부재판으로 일본 시민단체 도움을 받은 할머니들의 일본 체류기 자료에서 할머니들이 약주를 드시며 즐겁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분들도 웃을 수 있구나. 이분들도 흥겹게 노래를 부를 수 있네. 할머니들도 즐거워할 수 있구나.' 지금까지 할머니들이 눈물을 흘리거나 억울하고 상처받은 모습만 보았고, 그런 줄로만 알고 있었다. 이분들도 당연히 즐겁게 노래하며 밝게 웃는 사람인데 지금까지 언론과 전시에서 보았던 모습은 어둡고 슬픈 모습뿐이었다.

이분들은 밝고 일상이 즐거웠을 수도 있는데, 전시하는 사람, 즉 우리 학예사들이, 우리 모두가 그렇게 표현한 것은 아닐까? 결국 일본 체류기 자료에서 보았던 할머니들의 즐거운 모습은 전시에 표현하지 못했다. 하나의 치유과정이고 마땅히 그렇게 해도 문제가 없는데 전시를 준비한 나 스스로 검열을 한 것이다.

전시를 여러 번 준비하고 개최했지만 이번 '위안부' 전시만큼 문구 하나하나 사진, 색감 등 모든 것에 조심한 적은 없었다. 그만큼 잘 몰랐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는 자기반성도 있었다. 이번 전시를 밝고 예쁘게 하고 싶었다. 아들이 전시회에 와서 알록달록하다고 했을 정도로 색을 많이 넣었다.

그동안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전시와는 또 다른 관점에 서서 이 문제를 바라보고자 했다. 지금까지 전시가 할머니들의 아픔을 나누는 전시였다면 한·일 시민이 연대해 일본 사법부에서 일본 정부의 책임을 인정했던 관부재판 과정을 희망 있게 소상히 알리고 싶었다. 이분들을 돕고 재판을 준비하고 아픔을 함께한 시민의 당당하고 따뜻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이들이 어떻게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도우며 함께하였는지 말이다.

/김주용 창원대박물관 학예실장


내용 문의 : 창원대학교박물관

055)213-2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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