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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 마우이섬 ‘무명 독립영웅’ 34명 전격 발굴...국립창원대, 포상 신청 완료! 7개월만에 100명 달성 ‘이례적 성과’...독보적인 현장 발굴·조사 역량 입증 전문성 강화할 ‘한인디아스포라발굴조사단’ 곧 출범…글로벌 행보 잰걸음 
국립창원대학교 디아스포라발굴조사단은 제107주년 3.1절을 맞아 하와이 마우이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34명에 대한 포상을 국가보훈부에 신청했다고 24일 밝혔다.
이번 성과는 그동안 오아후섬에 편중되어 있던 하와이 독립운동사 연구의 지평을 마우이섬으로 대폭 확장했다는 점에서 학술적·역사적 가치가 높다는 평가다. 기존 마우이 지역 독립유공자는 함호용 지사(2005, 대통령표창) 1명에 불과했으나, 조사단은 현지 묘역을 직접 조사하고 흩어진 행적을 치밀하게 추적하여 마우이섬이 독립운동의 또 다른 핵심 거점이었음을 입증해 냈다.
특히 조사단은 지난해 8월 65명, 10월 1명을 신청한 이후, 불과 7개월 만에 추가로 34명을 발굴하는 등 누적 100명의 포상 신청이라는 이례적인 기록을 세웠다. 이는 조사단의 체계적인 데이터 분석력과 현장 조사 역량이 결합하여 일궈낸 집약적인 결실로, 독립유공자 발굴 분야에서 보기 드문 연구 효율성과 전문성을 보여준 사례로 꼽힌다.
이번 명단에는 기록상으로만 존재하던 비밀결사단체 ‘포와하나연합회(布哇ハナ連合會)’와 ‘키파훌루 군무부(キフルㇴ—軍務部)’의 관련 인물들도 포함되었다. 이 두 단체는 한국건설을 목적으로 군사교육을 수행하는 등 일제에 위협이 되었던 마우이섬의 핵심 독립운동단체로, 조사단은 행적이 묘연했던 이들의 활동을 국내외 자료를 통해 구체적으로 복원하고 잊혔던 사료를 명확히 함으로써 역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무명 독립운동가들을 조명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마우이 현지 묘역 조사에서 출발한 후속 문헌·행적 연구의 성과로 확인된 인물들이다. 
이번 조사에서 하와이 현장 조사를 총괄한 김주용 국립창원대 박물관 학예실장은 “이번 포상 신청은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묘비에서 읽어내고, 하와이와 국내 아카이브, 후손 소장 자료를 끝까지 추적한 결과”라며 “그동안 연구의 공백지로 남아 있던 마우이 지역이 묘역 조사와 데이터 분석을 통해 독립운동의 또 다른 핵심 거점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조사단이 이번에 포상 신청한 인물 가운데는 마우이 한인 묘역 ‘영안회매장지(Waiehu Korean Cemetery)’ 진입로 조성을 위해 전 재산을 기탁해 ‘심상렬 길’의 이름을 남긴 심상렬(沈相烈, 1885~1949), 병상에서도 독립금을 모으며 “독립금 한 푼 못 내면 후일 지하에 간들 애국열사의 충혼을 뵐 면목이 없다”고 남긴 이은구(李殷九, 1873~1958) 등 디아스포라 현장에서 헌신한 인물들이 포함되어 있다. 마우이 파이아 농장에서 일하며 고향 제주 법환리 교회 설립을 지원한 강한준(康漢俊, 1880~1927), 대한인국민회 마우이지방회 재무로 독립운동 자금을 관리한 여성 활동가 최해나(崔海羅, 1882~1979)처럼 이민 노동·종교 활동·구제 사업과 독립운동이 긴밀히 얽혀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도 함께 확인됐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국립창원대는 연구의 연속성과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총장 직할 지원시설인 ‘한인디아스포라발굴조사단’을 정식 발족 예정하고 있다. 이를 통해 하와이를 넘어 전 세계로 뻗어 있는 한인 디아스포라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복원하는 연구 거점으로 거듭날 계획이다.
국립창원대 박민원 총장은 “7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100분의 영웅을 모시게 된 것은 문헌과 현장을 발로 뛴 진정성의 결실”이라며, “조국을 향했던 그분들의 마음이 누추해지지 않도록, 또한 그 희생이 헛되이 소비되지 않도록 국립창원대가 역사 복원의 중심에 서겠다”고 전했다. 이어 “총장 직할 지원시설로 출범하는 조사단은 하와이를 넘어 세계로 뻗어가는 한인 디아스포라 연구의 글로벌 허브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주요 인물 소개 ◇심상렬(沈相烈, 1885.10.25. ~ 1949.12.21.) : 하와이에서 독립군사관의 양성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대조선국민군단의 단원으로 활동하였으며, 대한인국민회 마우이지방회 회장, 재미한족연합위원회 마우이지방회 통상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별세할 당시 모아둔 모든 자금을 대한인국민회에 기탁했으며, 하와이 한인들이 자체적으로 조성한 마우이 ‘영안회 매장지(Waiehu Korean Cemetery)’로 가는 길을 만드는 데 사용하였다. 하와이 한인들은 그의 유지를 받들어 이를 ‘심상렬 길’이라 명명하였다.
◇이은구(李殷九, 1873.08.15. ~ 1958.03.24.) : 국민회 올루왈루 지회 사법, 대한인국민회 라하이나 지회 총무, 하와이 대한인교민단 총무를 역임하였다. 노환으로 인해 마우이 굴라병원에서 치료받으면서도 지인들이 문병을 와 도와준 돈을 절용절식(節用節食)하여 독립금으로 기부하며,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기도 하였다. “미세스 정! 이은구도 한족의 피를 지닌 터에 우리의 만세자유독립을 찾으려고 우리 청년용사들이 뜻깊은 생명을 희생하며 악전고투하는 이 때에 독립금 한 푼을 못내고 있으면 후일 죽어 지하에 간들 우리 애국열사들의 충혼을 뵐 낯이 없고, 지금 죽더라도 눈을 감지 못하겠음으로…우리 독립금에 보탬이 될까 하여 송부하오니 찾아서 재무부로 전하여 주심을 복망합니다.”
◇강한준(康漢俊, 1880.02.05. ~ 1927.07.13.) : 대한인국민회 가익가 지회총무, 파이야 지회 대의원 등을 역임하였다. 마우이섬 파이야의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며, 자신의 고향인 제주 법환리에 전도인을 세워줄 것을 전북노회에 요청하였다. 이와 함께 5년을 기한으로 매년 60원의 비용을 제공하기로 결의한다. 그에 따라 제주 법환리에는 전도인과 교회가 세워졌으며, 올해로 설립 109주년을 맞은 법환교회의 효시가 될 수 있었다.
◇최해나(崔海羅, 1882.02.21. ~ 1979.04.26.) : 독립유공자 함호용(2005, 대통령표창)의 아내로, 1905년 함께 하와이로 이민하였다. 해산되었던 대한인국민회 마우이지방회의 복설에 부부가 함께 참여하였으며, 그녀는 재무로 오랜 기간 시무하였다. 혈성금·3·1금·전후한국구제위원회 구제금 등 독립운동자금 및 한국사회 재건비용을 여러 차례에 걸쳐 지원하였으며, 독립운동단체의 임원으로서 작성한 일기·문서들은 현재까지도 마우이섬의 독립운동사를 고증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붙임: 국립창원대 디아스포라발굴조사단의 하와이 마우이섬 한인 디아스포라 묘비 식별·탁본 및 비문 판독·기록 등의 활동 사진. 끝.
내용 문의 : 박물관(055.213.2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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