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산칼럼] AI, 지역 게임산업의 ‘기울어진 운동장’ 가속화 우려- 이상빈(국립창원대 신산업융합경영학과장)
경제학자 슘페터가 주창한 ‘창조적 파괴’는 기술 혁신이 낡은 질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경제 구조를 세우는 역동성을 의미한다. 현재 생성형 AI는 게임 산업에서 이 파괴적 혁신을 가장 극렬하게 보여주는 변곡점이다. 하지만 이 파도가 모든 지역에 평등한 기회를 제공할 것이란 낙관론 뒤에는, 자본과 인프라가 집중된 곳에 더 큰 혁신의 과실이 쏠리는 기술 편향성의 그림자가 깔려 있다. 현대 노동경제학의 핵심 담론인 기술 진보의 편향성 이론은 새로운 기술이 모든 경제 주체에게 동일한 혜택을 주지 않는다고 경고한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대런 아세모글루는 AI와 같은 범용 기술은 고숙련 인적 자본과 결합할 때 생산성이 지수함수적으로 폭발하지만, 대체 가능한 숙련도를 가진 집단에겐 오히려 시장 가치의 하락을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게임 산업도 마찬가지다. AI가 그래픽을 그리고 코드를 대신 짜주며 제작의 문턱을 낮추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이를 정교하게 통제하고 고도화된 비즈니스 모델로 치환할 수 있는 핵심 인재들의 가치만 더욱 높이고 있다. 이런 고숙련 인재들이 판교 등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역 게임 산업은 AI라는 도구를 손에 쥐고도 이를 성과로 연결하지 못하는 역설적 고립 상태에 빠질 수 있다.
설상가상, AI 경쟁 가속화에 따른 핵심 하드웨어 비용의 급등은 지역 기업의 목을 옥죄고 있다. AI 연산의 핵심인 고성능 그래픽 카드(GPU)와 대용량 메모리(RAM) 가격의 가파른 상승은 자본력이 부족한 지역 중소 게임사들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진입 장벽이 된다. 제작의 효율을 높여야 할 AI 기술이, 역설적으로 장비를 갖추기 위한 초기 투자 비용을 폭등시키며 지역 기업의 시도 자체를 가로막는 것이다.
더욱 우려되는 지점은 ‘수확 체증의 법칙’이 작용하는 플랫폼 중심의 시장 구조다. AI 기술로 인해 게임 제작의 한계비용은 낮아졌지만, 반대로 시장에서 발견되기 위한 비용은 천문학적으로 상승했다. 거대 자본을 보유한 수도권 기업들은 AI로 절감된 비용을 글로벌 마케팅과 데이터 분석에 재투자하며 시장의 지배력을 공고히 한다. 반면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 기업들은 제작 효율을 높여도 이를 실제 매출로 연결할 시장 진입로를 찾지 못하는 병목 현상에 갇히게 된다. 이는 결국 혁신이 격차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수도권 집중화를 더욱 고착화하는 경로 의존성 현상을 강화하게 된다. 이를 극복하려면 지역의 자생력에만 의존하는 폐쇄적 정책에서 벗어나, 수도권의 고도화된 인프라를 지역의 창의성과 결합하는 상생형 기술 협력 모델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우선 지자체는 개별 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고사양 GPU 서버 등 AI 컴퓨팅 인프라를 공동으로 활용할 수 있는 지원 체계를 강화해 하드웨어 비용 부담을 크게 낮춰줘야 한다. 나아가 지역 기업의 독창적 IP와 수도권 선도 기업의 AI 제작 표준 및 유통망을 연계하는 수평적 가치사슬 협력을 지원해야 한다. 이는 지역의 우수한 콘텐츠가 수도권의 강력한 마케팅 엔진을 통해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는 실질적인 지렛대가 될 것이다. 또한 개별 기업이 파편화된 대응으론 거대 플랫폼의 알고리즘 권력에 대항할 수 없다. 지역 기업들이 홍보 노하우와 사용자 반응 데이터를 상호 공유하며 플랫폼 변화에 공동 대응하는 지식 공유 네트워크를 활성화하고, 중소 게임사가 접근하기 어려운 고도화된 AI 마케팅 솔루션을 활용할 수 있도록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
AI라는 거대한 파도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경남의 게임 산업이 이 파도에 휩쓸려가는 피해자가 될지, 아니면 수도권과의 전략적 보완 관계를 통해 세계 시장으로 비상하는 혁신의 주체가 될지는 기술의 편리함 속에 숨겨진 경제적 불균형의 실체를 잘 직시하고 대비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상빈(국립창원대 신산업융합경영학과장)
*출처- 경남신문: [성산칼럼] AI, 지역 게임산업의 ‘기울어진 운동장’ 가속화 우려- 이상빈(국립창원대 신산업융합경영학과장) :: 경남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