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비장애아동 모두 즐거운 공간 지향
국내에는 아직 0.05%…법적 기준 부재
전문가 "놀이를 통한 통합교육 효과 커"7일 충남 홍성군 홍성초등학교에서 장애아동을 대상으로 '무장애 통합놀이터' 디자인 설명회가 진행되고 있다. 홍성=김나연 기자
"(소개된 놀이기구가) 모두 다 좋아요."
국제아동권리 비정부기구(NGO) 세이브더칠드런이 7일 충남 홍성군 홍성초등학교에서 개최한 '무장애 통합놀이터 디자인 설명회'. 10월에 개장할 놀이터 모습을 본 김성빈(11)군이 활짝 웃었다. 발달장애가 있는 김군은 앞서 자신이 원하는 놀이터의 모습을 꾸며보는 워크숍에 참석했다. 본인 의견이 반영된 놀이터가 지어지는 소감을 묻자 김군은 "재미있다"고 답했다. 어떤 놀이기구가 제일 마음에 드냐는 질문에는 "다 좋다"고 거듭 말했다.
무장애 통합놀이터는 장애를 가진 어린이도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는 놀이터다. 다만 장애아동 전용이 아닌 비장애아동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지향한다. 장애아동들의 경우 유형과 정도가 다양해 모든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최대한 많은 어린이를 포용하자는 취지다.
홍성군은 충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한전문건설협회의 후원을 받아 협력단체 세이브더칠드런과 함께 무장애 통합놀이터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이달 1일부터 운영을 시작한 감각통합치료센터(발달지연 아동 치료시설) '홍성 꿈자람센터' 옆 부지에 지어질 예정이다. 설명회 의견을 모아 설계를 일부 수정하고, 준공 및 안전진단을 거쳐 10월 개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날 설명회는 장애아동(발달장애) 5명, 성인 관계자 20여 명, 비장애아동 10여 명을 대상으로 나뉘어져 3번에 걸쳐 진행됐다. 설명회에 참석한 어린이들은 4, 5월에 세이브더칠드런이 진행한 워크숍에서 원하는 놀이터의 모습에 대해 직접 의견을 내놓은 당사자다. 비장애 어린이 워크숍에선 원하는 놀이와 공간에 대해 적은 포스트잇을 붙이고, 조별로 갖고 싶은 놀이터를 그려보는 시간을 가졌다. 장애 어린이들에게는 놀이시설과 주변 배경이 담긴 그림카드를 배치하게 하거나 직접 간단한 놀이를 진행하면서 선호도를 파악했다.
놀이시설 설치 업체 가이아글로벌이 7일 공개한 홍성군 꿈자람센터 통합놀이터 조감도. 조합놀이대, 바구니그네 등 장애아동도 이용할 수 있는 놀이시설이 배치돼 있다. 세이브더칠드런·가이아글로벌 제공
이렇게 모은 의견을 바탕으로 설계된 놀이터는 △조합놀이대 △바구니그네 △네트정글짐 △모래놀이 △흔들줄 등으로 구성됐다. 조합놀이대는 휠체어도 이동할 수 있도록 경사로로 제작하고, 바퀴가 빠지지 않도록 경사로 양옆에 이탈방지턱을 달 예정이다. 미끄럼틀은 보호자와 함께 탈 수 있을 만큼 폭이 넓고, 그네는 앉기 힘든 어린이가 눕거나 엎드려 탈 수 있도록 널찍한 바구니 형태다. 어른이 아이를 안고 이용할 수도 있다. 휠체어가 들어올 수 있도록 놀이터 진입로는 단차가 없고 놀이터 바닥은 탄성력이 높은 고무칩으로 포장된다.
휠체어를 탔거나 보호자를 동반한 장애 어린이도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 조합놀이대. 세이브더칠드런·가이아글로벌 제공
이날 설명을 들은 장애·비장애 어린이들은 만족스러워했다. 디자인을 소개하는 중 "재미있겠다"고 재잘거리기도 했다. 추가 건의 사항, 마음에 드는 부분 등을 적어내도록 나눠준 종이에 가장 많이 적힌 응답은 "다 좋아요"였다. 이 밖에 '바구니그네가 좋다' '놀이기구를 특정 색깔(노란색·빨간색·초록색 등)로 꾸며 달라' '일반 그네도 설치해 달라'는 응답이 공통적으로 나왔다.
7일 충남 홍성군 꿈드림지역아동센터에서 비장애 어린이를 대상으로 열린 '무장애 통합놀이터' 설명회에 참석한 한 어린이가 종이에 적은 의견. '좋아요' '바구니그네가 좋아요' 등 내용이 적혀 있다. 홍성=김나연 기자
장애아동을 키우는 학부모들도 성인 대상 설명회에서 "장애아동 대부분은 보호자가 동반하는 만큼 보호자가 지켜볼 수 있는 공간도 설계해 달라" "그늘막을 넓게 설치해 달라" 등의 바람을 전달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자녀를 둔 진유순(56) 충남장애인학부모회장은 "아이가 어렸을 때 놀이터를 가면 다른 아이들이 불편해할까 봐 늘 눈치가 보였다"며 "이곳은 비장애아동도 '장애가 있는 친구를 수용하겠다'는 합의를 갖고 놀이를 시작할 테니 의미가 크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통합놀이터는 아직 국내에선 개념이 생소한 데다 몇 곳 없다. 지난달 5일 기준 행정안전부에 등록된 전체 놀이터 중 통합놀이터는 단 0.05%(43곳·통합놀이터만들기네트워크 집계)에 불과하다. 통합놀이터 설치에 관한 법적 기준이 없어 대부분 지자체나 기관이 안전 문제를 우려해 설치를 꺼린다는 게 세이브더칠드런 측 설명이다. 유엔아동권리협약 제31조에 명시된 아동의 '놀 권리'에서 장애아동은 소외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에 안태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장애·비장애 어린이가 함께 이용 가능한 놀이터를 조성할 국가, 지자체의 의무가 명시된 법률 개정안을 지난 1월 대표발의하기도 했다.
최나리 광주교대 특수·통합교육과 교수는 "유아들은 함께 노는 과정에서 '평범하게 서로 어울릴 수 있다'는 걸 배운다"며 "놀이를 통한 배움이 더 흥미를 유발하고 오래가기 때문에 통합놀이터는 (장애·비장애) 통합교육의 효과가 크다"고 설명했다. 박찬우 백석대 특수교육과 교수도 "모두를 포용할 수 있는 공간은 굉장한 인식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며 "접근성을 높이는 것뿐 아니라 안전하고 다 같이 즐길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사원문 :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469/0000876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