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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창원대, 하와이 빅아일랜드 독립유공자 포상 신청 올 3·1절 이만정 선생 포상 이어 빅아일랜드 미발굴 독립운동가 20명 새롭게 발굴 동지회 숯 공장·초기 한인교회·사탕수수 농장 묻힌 독립운동사, 묘비 조사로 역추적 “하와이 지역 포상 신청 누적 120명…미주 본토 및 중앙아시아로 조사·복원 확대” 
국립창원대학교 한인디아스포라발굴조사단은 3일 ‘제81주년 광복절’을 맞아 미국 하와이 빅아일랜드를 중심으로 활동한 한인 독립운동가 20명에 대해 국가보훈부에 독립유공자 포상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조사단이 발굴해 포상을 신청한 하와이 지역 독립운동가는 누적 120명에 이르게 됐다.
조사단은 지난해 66명, 올해 제107주년 3·1절을 맞아 마우이섬 독립운동가 34명을 신청한 데 이어 이번에는 빅아일랜드에서 활동한 20명의 공적을 새롭게 확인했다. 빅아일랜드는 초기 한인들이 사탕수수 농장에서 노동하며 정착한 지역으로, 한인교회와 대한인국민회 지방조직이 운영되고 이승만이 이끈 동지회의 숯공장이 설치되는 등 한인사회의 주요 생활·활동 거점이었다.
그러나 오아후섬에 비해 관련 연구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아 이 지역 한인들의 독립운동 행적은 오랫동안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다. 실제로 빅아일랜드를 중심으로 활동한 인물 가운데 올해 3·1절 계기 독립유공자로 포상된 인물은 조사단이 지난해 신청한 이만정 선생이 유일하다. 조사단은 현지 한인 묘역에서 확인한 묘비의 이름과 생몰연도, 가족관계를 출발점으로 한인신문과 대한인국민회 자료, 독립운동자금 명부, 교회 기록 등을 교차 검토해 20명의 생애와 독립운동 행적을 역추적했다. 
이번 신청 대상자인 박자도 선생(1879~1970)은 1905년 하와이로 이민한 뒤 대한인국민회와 재미한족연합위원회 등에서 활동하며 독립운동자금을 지속적으로 지원했다. 특히 하와이에서 항일 무장투쟁을 준비한 대조선독립군단의 단원으로 활동한 사실도 확인됐다.
서수복 선생(1899~1964)은 부산 출신으로, 1919년 4월 30일 사진신부로 하와이에 이민해 김경식과 혼인했다. 혼인 이후 남편의 성을 따라 김수복으로도 불렸다. 1947년 힐로부인회 회장과 1949년 힐로 부인국민회 지방회장을 역임하며 빅아일랜드 한인 여성사회를 이끌었고, 1937년부터 1960년까지 부인구제회 의무금·혈성금·독립금·전후한국구제회 구제금·본국 수재민 구휼금 등을 지속적으로 지원했다. 광복 이후에도 조국 재건과 구호를 위한 기부를 이어가 사진신부로 이주한 한인 여성이 독립운동 지원을 넘어 해방 이후 조국의 재건에도 꾸준히 참여했음을 보여준다.
이병준 선생(1886~1951)은 빅아일랜드 코할라 지역에서 대한인국민회 활동을 이끌며 독립운동자금과 조국재건자금을 지원했다. 현재 코할라 한인교회의 스테인드글라스에는 이병준 선생과 아내 김필애, 아들 이윤일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 초기 한인교회와 이민공동체의 역사를 전하고 있다. 
국립창원대 박민원 총장은 “빅아일랜드의 묘비에서 이름을 찾고 흩어진 기록을 연결하면서, 농장에서 일하며 정착한 평범한 이민자들의 일상이 곧 독립운동의 기반이었음을 확인했다”며 “한인 최초의 공식 이민지인 하와이에서 축적한 조사 성과를 바탕으로 미주 본토와 중앙아시아 등으로 조사 범위를 확대해 조국의 독립과 재건을 위해 헌신하고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한인 디아스포라의 삶과 공적을 끝까지 찾아내겠다”고 전했다.
한편 국립창원대 한인디아스포라발굴조사단은 4일부터 30일까지 미국 하와이와 샌프란시스코, 우즈베키스탄에서 현지조사를 실시해 한인 디아스포라의 삶과 독립운동 행적을 조사·복원할 예정이다. 

*사진: 박자도 선생 묘비, 서수복 선생 묘비, 하와이 코할라 교회 스테인드 그라스에 새겨져 있는 이병준 선생 가족 정보(/이상 국립창원대 한인디아스포라발굴조사단), 하와이 이민 한인사회의 본국 수재민 구휼금 사진(1957. 10. 2.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정보시스템), 하와이 대조선국민군단 군사들의 훈련 사진(/독립기념관 제공). 끝.
내용 문의 : 박물관(055.213.2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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